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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할 길 백남권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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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할 길

 

저자는 심리 치료 현장에서 만나 성공적으로 혹은 실패로 끝난 환자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건강한 삶을 향한 진화 과정에 필요한 요소들을 명쾌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오는 정신질환자를 오히려 의지가 강한, 영적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본다. 정신 질환과 직면하고 전적으로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야말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임을 알아야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이 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각자는 영원히 희생자로 남을 뿐이다. 출간 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책은, 삶에서 마주치는 고통과 정면으로 맞서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데 필요한 '자기훈육법'을 일깨워준다.

1'훈육'에서는 영적 성장에 꼭 필요한 고통을 피하려 하거나 쉬운 길을 택하려는 게으름을 살펴본다. 2'사랑'에서는 게으름을 사랑의 반대말로 정의한다. 128 '자아 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단언함으로써 그에 필수적인 행동과 활동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게으름을 살펴본다. 3성장과 종교’ 4'은총'에서는 게으름을 원죄의 개념과 연관 지어 우리를 끌어내리고 진화를 방해하기 위해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엔트로피의 힘으로 규정한다.

 

저자소개 저자 M. 스캇 펙 MORGAN SCOTT PECK(19362005)

하버드대학(B.A.)과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M.D.)에서 수학한 후, 10여 년간 육군 군의관(정신과 의사)으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개인과 조직에서의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고 그러한 통찰은 여러 편의 책에서 구체화된다. 1978, 마흔두 살에 쓴 첫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사랑, 전통적 가치, 영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심리학과 영성을 매우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중요한 책으로 평가되며 이후 뉴욕타임스의 최장기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할 정도로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불교도로서 이 책을 집필한 이후, 저자는 공개적으로 크리스천으로의 개종을 선언하고 인간 심리와 기독교 신앙의 통합을 지향하는 글쓰기에 매진한다. 개인뿐 아니라 조직과 사회의 영적 성장을 꿈꾸었던 스캇 펙은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비영리 교육기관인 공동체장려재단(FCE)을 만들어 평화적인 동력을 구현해보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의지와 나름의 해법은 평화 만들기(1987)에 고스란히 담겼다.

일생 동안 자기 훈육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그 때문에 진정한 자기계발서SELF-HELP BOOK 장르를 구축한 저자라고 평가받는 스캇 펙은 2005,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으로는 인간의 악에 대한 심도 있는 탐색을 보여준 거짓의 사람들(1983), 논픽션에서 벗어난 심리 스릴러물 창가의 침대(1990),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다룬 주제를 더 발전시킨 강연 모음집끝나지 않은 여행(1993), 첫 출간 이후 20여 년간 더 깊어진 통찰과 통합적 시각을 보여주는 그리고 저 너머에(1997) 등이 있다.

1. 자기 수양

 

10. 도전에 대한 열린 마음

진실에 대해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엄격한 자기 성찰을 뜻한다. 우리는 자신과 세상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을 돌아볼 뿐 아니라 동시에 세상을 성찰하는 주체인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정신 의학자들은 자신의 감정 전이와 갈등을 이해하지 않고는 환자의 감정 전이와 갈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련 과정에서 배우고 이해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 의학자들은 수련과 발전의 일환으로 자신의 심리 치료나 심리 분석을 받을 것을 권유받는다. 불행하게도 모든 정신 의학자들이 이러한 권유에 응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철저하게 살펴보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만큼 철저하게 살피지 않는 사람이 정신 의학자를 포함해서 많다. 세상이 유능함을 판단하는 바에 따를 때, 그들은 유능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절대 현명한 사람은 아니다. 현명한 삶은 반드시 깊이 생각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삶이다. 과거 미국 문화에서 깊이 생각하는 것은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1950년대에 사람들은 아들라이 스티븐슨(Adlai Stevenson)지식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라 불렀고 훌륭한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라 믿었는데, 바로 심사숙고하고 자기 회의에 빠지는 버릇이 있다는 면에서 그가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늘 깊이 생각하고 자기 회의에 자주 빠지는 심사숙고형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들이 청소년이 된 퍽 진지한 자신의 아이들에게 퍽 진지하게 넌 생각이 너무 많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생각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능력을 가진 우리의 전두엽이야말로 우리의 전두엽, 즉 생각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능력이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라는 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무슨 부조리란 궤변이란 말인가. 운이 좋게도 다행히도 이런 태도는 변하고 있는 듯하며, 우리는 세상을 위험하게 하는 원인이 외부보다는 우리 내부에 더 많이 있고, 지속적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깊이 생각하는 일이 궁극적인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중인 비교적 많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중인 사람은 비교적 많지 않다. 자신 밖의 세상을 돌아보는 것보다 자신 안의 세상을 돌아보는 것이 자신으로서는 훨씬 고통스럽다. 그것은 분명히, 성실하게 자기를 성찰하며 살려고 할 때 발생하는 고통 때문인데, 이것을 피하려 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하지만 진실에 대해 헌신할 때 이 고통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자기 성찰을 더 깊게 해나갈수록 점점 덜 중요해지며 그렇기 때문에 점점 덜 고통스러워진다.

진실에 대해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은 또한 기꺼이 자신에 대한 도전을 받아들이는 삶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진 진실의 그린 현실 인식의 지도가 유효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지도를 만드는 사람의 비평과 도전에 그것을 노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폐쇄된 체계 속에 살게 된다. ,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유추를 빌리자면, 커다란 종 모양의 단지 안에서 자신이 내뱉은 냄새나는 공기만을 다시 들이마시며 갈수록 망상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그린 진실의 지도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 때문에 우리는 대개 그 정당성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회피하거나 막으려 한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어디에다 대고 말대꾸야. 아빠한테.” “엄마 아빠한테 말대꾸하는 거 아냐.” 배우자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이렇게 삽시다. 당신이 나에게 뭐라 하면 나는 함께 살기 고약한 사람이 될 테고 당신은 후회할 걸요.” 자신의 가족과 세상에게 노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늙고 약해. 네가 내게 도전한다면 대든다면 내가 난 죽을지도 모르거나, 몰라,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너는 내가 이승에서 누린 마지막 날들을 이렇게 끔찍하게 만든 책임감을 느끼게 될지도 몰라. 될 거야.” 종업원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행여 내게 도전할 만큼 대담하다면 굉장히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직장을 알아보게 될 테니까 말이야.”

도전을 회피하는 경향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보이는 성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사람들 사이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본능적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본질적이거나 유익하거나 바꿀 수 없는 행동이라는 뜻은 아니다. 옷을 바지를 입은 채 배변하거나 이를 닦지 않는 것도 역시 본능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이지 않은 행동을 해서 본능적이지 않은 행동 그 자체가 이차적 본능이 되도록 배운다. 게다가 모든 자기 수양은 우리 자신에게 본능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인간 천성의 본성의 또 다른 특징은 본능적이지 않은 일은 하고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천성을 본성을 형성하는 우리의 능력일 것이다.

심리 치료를 시작하는 행동이야말로 그 어느 행동보다 더 본능적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더 인간적이다.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가장 심오한 도전에 자신을 의도적으로 내놓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돈을 내고 우리를 면밀히 살펴보고 인식하게 한다. 이렇게 도전에 자신을 내놓는 것은 심리 분석가의 사무실에서 소파에 눕는 행동이 상징하는 것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심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상당히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사람들이 심리 치료를 하지 않는 주요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이다. 이것은 정신 의학자들 자신도 포함하는 사실인데, 그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기 수양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좀처럼 그들 자신의 치료를 편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와는 반대로 많은 정신 분석 환자들은 판에 박힌 이미지와는 달리, 심지어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에 이런 용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있다는 면에서 기본적으로 평균 이상으로 강하고 건강한 사람들이다.

심리 치료를 하는 것은 도전에 대해 마음을 여는 근본적인 모습이지만, 우리는 더 일반적인 일상적인 상호작용에서 상호작용에도 매일매일 큰맘 먹고 마음을 열 수 있는 비슷한 기회를 마주한다. 기회가 있다. , 냉수기 앞에서나 회의할 때, 또는 골프장, 저녁 식탁, 불이 꺼진 침대에서; 동료나, 상사, 종업원, 배우자, 친구, 연인, 부모, 아이들과 상호작용할 때 말이다. 가끔 나를 만나러 오던, 머리를 단정하게 땋은 한 여인이 치료를 마치고 소파에서 일어날 때마다 번번이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이 새로운 행동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건넸다. “몇 주 전에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때 제 뒷머리가 평평해진 눌린 것을 남편이 알아봤어요.”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남편에게 왜 그런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제가 여기서 소파에 누워 상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저를 놀릴까봐 걱정 되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뤄야 할 한 가지 주제가 더 생겼다. 심리 치료의 가장 큰 가치는 심리 치료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오십 분이라는 시간동안 복잡한 다룬 자기 수양의 영역을 환자의 일상적인 일이나 인간관계로 넓히는 데서 나온다. 넓혀야 한다.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도전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이 태도가 살아가는 한 방식이 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이 여인은 자신이 나와 함께 있을 때처럼 남편에게도 솔직할 수 있을 때까지 완전히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없을 것이.

초기에 의식적인 수준에서 의식적으로 도전이나 자기 수양 교육을 바라며 정신 의학자나 심리 치료사를 찾아오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저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도움을 지지를 받는 동시에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내빼는 사람이 많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도망가려는 유혹을 느낀다. 그들에게 마음을 진정 안정시키는 참되고 유일한 길이, 도전과 자기 수양을 통하는 길이라 가르치는 것은 신중을 요하고 때때로 오래 걸리거나 흔히 실패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환자를 심리 치료로 유혹한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 년이나 그 이상 만나온 몇몇 환자들에 대해 그들은 아직 진정으로 치료를 시작하지 않았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리 치료에 대한 열린 마음을 장려(관점에 따라 요구)하는 특별한 기술은 자유롭게 연상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환자에게 이렇게 말할 때 쓰인다. “머리에 떠오르는 어떤 생각이든 말로 표현해 보세요. 하찮고 난처하거나 고통스럽고 무의미하게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머릿속에 생각이 동시에 하나 둘 이상 있다면 가장 망설여지는 것을 고르시면 됩니다.” 실제로 말만큼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임하는 사람들은 대개 즉시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도전하는 데 너무 저항해서 단순히 자유롭게 연상하는 척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퍽 유창하게 이것저것 이야기하지만 핵심적인 세부사항은 빼놓는다. 한 여인이 어렸을 때 불쾌했던 경험을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은행 계좌에서 천 달러나 초과 인출했다는 사실을 남편이 그날 아침에 알았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다. 이러한 환자들은 심리 치료 시간을 일종의 기자 회견으로 바꾸려 한다. 기껏해야 그들은 도전을 회피하려 애쓰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며, 대개 교묘한 형태의 거짓말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개인과 조직이 도전에 대해 마음을 열려면 그들이 가진 진실의 그린 현실 인식의 지도를 대중이 검사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내놓아야 한다. 기자 회견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진실에 대해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의 세 번째 의미는 완벽하게 정직한 삶이다. 그것은 우리가 의사소통할 때 (우리가 말하는 단어들 뿐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확실히 우리가 아는 그대로의 진실 또는 현실을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변함없이 반영하는지 지속적으로 몸소 감시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정직은 고통 없이 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도전이 주는 고통과 그 결과를 도전과 그 결과가 주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에 관해 한 거짓말은 네 살짜리 아이가 엄마에게 전등이 어떻게 탁자에서 떨어져서 깨졌는지에 대해 하는 거짓말과 다를 바 없고 그만큼 어리석다. 어설프다. 도전의 천성이 본성이 정당한 이상 (대개 실제로 그렇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정당한 고통에서 우회하려는 시도이며 여기에서 바로 정신병이 생긴다.

무언가를 우회한다는 개념은 지름길로 가기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장애물을 우회하려 할 때마다 더 쉽고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길, 즉 지름길을 찾는다. 나는 인간 정신이 성장하는 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이라 믿으며, 명백히 진보적인 생각을 추종한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되도록 빠르게 성장하고 진보해야 한다는 것은 올바르고 지당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적 성장에 이르는 정당한 지름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올바르며 지당하다. 하지만 핵심 단어는 정당한이다. 인간은 정당한 지름길을 무시하려는 만큼이나 정당하지 않은 지름길을 찾아내려 한다. 예를 들면 학위 시험 준비를 하면서, 책의 원본을 모두 읽는 것 대신에 책의 줄거리를 공부하는 것은 정당한 지름길이다. 그 줄거리가 훌륭해서 주요 내용을 잘 포함하고 있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는 이런 방법을 통해 본질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정행위는 정당한 지름길이 아니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성공적으로 해내기만 하면 부정행위를 한 사람은 시험을 통과하고 가짜임을 알아채기 어려운 그토록 바라던 학위를 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본질적인 지식을 얻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학위는 사기이며 거짓 진술이다. 그 학위가 삶의 바탕이 되는 한 그 부정행위자는 사기와 거짓 진술 속에 살게 되며 종종 그 거짓말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다.

성실한 심리 치료는 개인의 성장으로 가는 정당한 지름길인데, 이는 종종 무시된다. 심리 치료를 무시하는 것을 가장 흔하게 합리화하는 예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것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난 심리 치료가 마음의 목발이 되지 않을까 걱정 되. 난 마음의 목발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이것은 대개 더 큰 두려움을 숨기는 것이다. 심리 치료를 이용하는 것은 목발이라기보다는 집을 짓기 위해 망치와 못을 이용하는 것만큼만 도움을 받는 것이다. 망치와 못을 쓰지 않고 집을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일반적으로 효율적이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망치와 못에 의존해야 하는 사실에 절망하는 목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심리 치료를 하지 않고도 개인적인 성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종종 그 과정은 불필요하게 지루하고 오래 걸리며 어렵다. 쓸 수 있는 도구를 지름길로 이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와는 반대로 심리 치료를 정당하지 않은 지름길로서 찾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부모가 아이들을 위한 심리 치료를 찾는 특정한 경우에 가장 일반적으로 발생한다. 그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이 약을 끊거나, 짜증내기를 그만두거나, 더 이상 나쁜 성적을 받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등 어떤 면에서 변하기를 바란다. 몇몇 부모들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아이들을 도우려 애쓰다가 지쳐서, 문제를 해결하기 바라는 진정한 의지를 품고 심리 치료사에게 온다. 다른 부모들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바꿀 필요 없이, 심리 치료사가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무언가 마법 같은 일을 해주기 바라면서, 종종 아이들 문제의 원인에 대한 명백한 지식 없이 원인을 명백히 아는 채로 찾아온다. 예를 들면 어떤 부모는 대놓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리고 이것이 우리 아들의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것도 알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결혼생활이 간섭받기를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당신에게 우리를 치료해 달라는 게 아니라, 우리 아들을 치료해 달라고 온 거예요. 가능하다면 그를 돕고 더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말이죠.” 또 어떤 사람들은 덜 공개적이다. 그들은 필요한 어떤 일이든 할 의지가 있다고 공언할 테지만, 아이가 나타내는 증상이, 그가 자라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부모가 전반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이를 위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바꿔야 속내를 다 털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우습군요.” 그러고는 그들에게 고통 없는 지름길을 제공할지도 모르는 다른 심리 치료사를 찾아 떠난다. 한참 후에야 그들은 친구들과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어. 우리는 심지어 여기저기서 심리 치료사 네 명과 상담했지만,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했어.”

우리는 물론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말이다. 우리 자신의 양심과 현실적인 인식이 우리의 적응(우리의 지도)에 우리가 이미 적응한 현실 인식의 지도에 도전하는 것은, 아마도 모든 면에서 일반 대중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하고 정당하면서도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종종 하는 무수한 거짓말 가운데 가장 흔하면서도 강력하고 파괴적인 두 가지는 우리는 정말 우리 아이들을 사랑해.”우리 부모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해.”.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정말 사랑하고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정말 사랑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경우에 사람들은 종종 그 실상을 깨닫지 인정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멀리 가버린다. 극단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나는 심리 치료를 진실 게임또는 정직 게임이라고 자주 언급하는데, 심리 치료가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환자들을 그러한 거짓말에 맞서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병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변함없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우리가 듣고 또 우리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이러한 원인들은 극도로 정직한 분위기에서만 드러나고 제거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치료사가 환자와의 관계에서 열린 마음과 솔직한 자세를 불러올 수 있는 완전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같은 고통을 이겨내지 않는데, 어떻게 환자가 진실을 마주하는 고통을 이겨내길 바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먼저 가본 경우에만 안내도 할 수 있.

 

8. 진실에 헌신하기 (요약)

문제 해결 과정의 고통을 다루는 세 번째 기술은 진실에 헌신하는 것이다. 진실을 마주대하는 것은 출발점과 목적지를 명확히 안다는 점에서 정확한 지도를 잘 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한 지도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고, 지도를 수정하려 하지도 않는다.

 

062 감정 전이: 시대에 뒤떨어진 지도 (요약)

시대에 뒤떨어진 지도를 고수하려는 태도는 정신병의 바탕이 된다. 감정 전이란 어린 시절에 세상을 이해하고 반응하던 방식이 어른이 된 후에도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이 곧 세상의 모습이라 생각할지 모르고, 이런 생각은 어른이 돼서도 남아있을지 모른다. 고통을 극복하려는 각오가 되어있을 때만 낡은 지도를 고칠 수 있다.

 

11. 진실을 알리지 않기 (요약)

거짓말은 부분적인 거짓말과 완전한 거짓말로 나눌 수 있다. 착한 거짓말이란 진실을 상당히 빼먹은 채 말하는 것인데, 완전한 거짓말보다 죄책감을 덜 느끼게 하지만,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역시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모가 아이에게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어서 아이들을 보호하려 하는 작은 거짓말이 나쁜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에까지 완벽하게 솔직한 부모의 태도나 초기의 환자에게 많은 진실을 털어놓는 심리 치료사의 모습도 좋지는 않다. 비즈니스에서는 솔직함과 부분적인 거짓말이 적절히 필요하다. 중요한 점은 부분적인 거짓말이 그 거짓말을 듣는 타인에게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이고, 그 경우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하면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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